2020년이 되었다.
하늘은 그리 맑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깥에 미세먼지가 거의 없어 창문을 열고 방을 환기시킨다.
2019년이 완전히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2019년이 있지만, 학년이 바뀌었고 올해는 작년이 되었다.
2020년이 되었다. 올해가 되었고 수요일이 되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부터, 남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겨울 방학은 어떻게 보내고 그렇게 올해는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야한다.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이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무계획이 실패하지 않는 최고의 계획이라 말했지만, 그럼에도 계획 없이 활기찬 하루를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계획이 필요하고 일상에 드라이브를 걸어줄 무언가가 그 사람의 하루만큼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 해당되는 건 아니고 어떤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의 기준이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밝히지 않아 무책임하다.
작년에 찍은 사진 중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작해 일부러 빛의 양을 줄이고 어둡게 찍은 사진들이 많다.
빛이 많으면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전반적으로 밝게 보인다. 하지만 사진이 하얗고 선명하지 않게 보이는 기분이 들고, 결국 사진이 어떤 피사체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빛을 줄여서 사진을 찍었다.
빛의 양이 적으면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피사체들 중 그게 자연광이든 인공조명이든 빛을 받고 있는 피사체와 그 주변 피사체들만 어슴푸레하게 보이고 나머지 것들은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해진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선택한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고 그게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내 친한 친구 한 명이 새롭게 카메라를 장만했다. 내 카메라와 동일한 모델을 구입해서 내가 간단한 카메라 조작법을 알려줬다.
그 친구를 포함해서 친한 친구들끼리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찍지 못한 사진을 받으려 그 친구의 카메라에서 사진들을 넘겨보고 있는데, 나와 달리 풍경과 사진 모두 넓게 그리고 밝게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그 사진들이 보기 좋았다. 항상 어떤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친구의 사진에서 그 친구의 긍정적인 느낌같은 게 보였다. 굉장한 비약과 착각이 껴있겠지만 그게 뭐 어떻든 나는 그런 기분을 받았다.
그렇다면 줌을 가득 당겨 마치 압박하듯 어두운 사진을 찍는 나는 속이 좁다거나, 아니면 여유가 없는 그런 성향을 가진, 그것도 아니면 심적인 여유가 부족한 사람인가- 라는 물음을 나에게 해보니 선뜻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좀 안타까웠다.
그래서 2020년에는 그 친구처럼 넓고 밝은 사진을 찍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삶의 양상이든, 사진을 찍는 스타일이든 각자에게 맞는 모습이 있을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나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다른 모습의 나를 만들어보는 것도 고여있지 않은 나를 만들어가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글 >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에 온갖 쉬운 말들 (0) | 2020.01.06 |
---|---|
대학의 의미 (0) | 2019.11.19 |